[복지현장에서] 친밀감과 성추행 사이에서 외줄 타는 지적ㆍ자폐성 장애인
친밀감과 성추행 사이에서 외줄타는 지적ㆍ자폐성 장애인
김 선 주 (한국여성사회복지사회 이사/나라(NARA)단기거주시설 원장)
170㎝가 넘는 큰 키에 마른 몸매를 가진 지적장애인 여성 한 분이 경찰서를 통해서 시설에 입소했다. 헐렁한 점퍼차림에 개인 짐 하나없이 단촐하게 온 20대 중반의 이영지씨(가명)!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지적장애인이고 성매매를 하는 여성으로 밝혀져 관할 구청 담당자는 입소유지에 회의적인 반응이었고 주위의 우려도 꽤나 컸다.
그러나 당장 수중에 천원남짓 찍힌 통장하나가 다였고 이렇게 내보내면 성매매와 연결될 것이 불 보듯 뻔했고 또 다른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에 케어하면서 향후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내가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라(NARA)단기거주시설이 학대 및 폭력에 노출된 지적ㆍ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보호 및 심리사회적 지원, 기ㆍ미아 발달장애인 연고자 연결과 일시돌봄을 실시하는 곳이기에 우리 선생님들의 manpower를 믿고 이영지씨의 입소생활을 시작하였다.
1인실 방안은 늘 속옷과 담배, 먹다 남은 물컵이 3-4개씩 즐비했고, 화장실 휴지도 1개가 하루에 다쓰이고, 목욕은 하루에 3-4번씩, 큰 통 샴푸가 2-3일만에 다 소비되고....한마디로 시설용품이 남아나는게 없이 무질서하고 털털한(?) 생활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영지씨는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 이번달 20일 수급비 나오면 여기 나갈거예요. 서울가든 다른 곳으로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고 별 다른 생각이 없어요”라고 한 다짐을 어김없이 지키며 홀연히 20여일의 시설 생활을 청산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직업능력테스트도 받게 하면서 다른 삶을 모색하려했지만 본인 스스로 완강히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며 떠난 이영지씨를 보면서 더 어려운 생활에 흡수되지 않기를 빌고 그리고 도움을 요청할 곳을 당당히 찾아서 안식을 할 줄 아는 그 능력을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흔히 발달장애인이라고 일컫는 지적ㆍ자폐성 장애인은 성추행 등의 성범죄와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와 대책은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성범죄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가해자인 경우도 다소 있다. 지적장애인이 타인의 친밀감과 성추행을 확연히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성범죄 피해자 되고, 반대로 발달장애인의 친밀감 표현이 타인에게 성추행으로 인지되어 범법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발달장애인이 성범죄의 피해자인 경우를 살펴보면, 2016년 성폭력 상담소에 접수된 장애인 성폭력 상담은 2만886건으로 전체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장애인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사건은 2016년 기준 3038건으로, 피해자 중 절반 가량이 (49.7%) 강간을, 39.9%가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기준 전체 피해자 1789명 중 72%가 발달장애인이었다(헤럴드 경제, 2018.04.21.).
발달장애인이 성범죄의 가해자인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적장애 2급인 B씨는 2017년 11월 한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11세 여자아이의 팔을 두세차례 만진 혐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로 기소됐다. 검찰 측은 B씨가 “피해자를 추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접근했다”고 공소요지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정서적 친밀감의 표현으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며 “B씨가 피해자가 싫어하자 곧바로 놓아줬던 것을 볼 때 성적 의미가 담긴 추행이 아닌 친해지고 싶은 행동으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세계일보 2019.03.23.).
발달장애인의 성폭력관련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있으나 발달장애인이 피해자일 경우 피해자구제에 대한 ‘진술조력인’ 정도의 제도적 보완이 있을 뿐이고, 가해자일 경우는 법적 처벌이 행해지더라도 발달장애인 특성상 재범율이 높기 때문에 발달장애인 전문 성교육프로그램이 실시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이영지씨처럼 지적장애인이 성문제와 연루되어 있을 때 성매매관련 지원시설에서 적절히 대응하기는 쉽지 않아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대전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윤진용)는 2018년 12월부터 대전보호관찰소,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협력해 ‘발달장애인 성폭력 피의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시행했다. 이처럼 발달장애인 맞춤형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일정 기간 보호관찰을 받도록 하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성범죄와 관련하여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기능적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지역사회에 잘 녹아나서 그들이 집 밖으로 발을 내딛은 용기가 혼란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촘촘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을 향한 진실한 친밀감과 발달장애인에 의한 순수한 친밀감 표현이 일상에서 받아들여지고 누려지는 삶을 꿈꾸며...
[경 력]
학력) 경성대학교 사회복지학 박사
경력) -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인권지킴이지원센터 센터장
- 아미정신건강센터 센터장
- 동서병원 사회사업실 실장